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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하는 선교 헌신자, 그 문제점과 대책
 
한국에서는 요 최근의 몇 십 년 동안 교회성장과 함께 선교의 놀라운 부흥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특권을 목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하나님의 역사 뒤안길에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한 안타까움이 또한 적지 않게 낙엽처럼 뒹굴고 있는 것을 본다. 그 중의 하나가 선교 헌신자들의 방황이다. 여기서 방황이라 함은 제 갈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현재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딴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필자의 선교사역의 기간들 중 많은 경우가 대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러 형태의 사역을 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의 경험으로나 주변의 현상들을 보면서 이러한 변고(?)가 왜 일어나고 있는지, 또 그 대책은 무엇인지 약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선교 헌신자들의 방황의 이유

첫째로 무엇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인격”이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격이라 함은 간단하게 보자면 지(知), 정(情), 의(意)를 말함인데 이 세 가지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헌신이 결핍되면 헌신의 지속성이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라 함은 여기서는 여호와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자기가 헌신해야 하는 분명한 당위성과 방법과 때를 말씀을 통해서 명확하게 발견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작업을 말한다. 헌신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감정을 사용하실 수 있지만 헌신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는 말씀만이 남는다. 결국 말씀만을 붙잡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헌신의 전형적인 과정은 감정을 매개로 하는 헌신이다. 이것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 붙잡고 나아가게 될 때에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허한, 껍데기 밖에 남지 않는 헌신이 된다. 왜냐하면 그 때의 감정은 오래 갈 수 없고 도 그 기분(?)을 삶 속에서 항상 유지하기란 거의 대부분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감정적 헌신은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을 이루어가려는 노력과 대가 지불(이것을 의지적 작용이라고 한다.)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헌신의 목표에 대한 날마다의 크거나 작은 ‘결단’으로 이루어진다. ‘결단’은 의지적 사고의 최종적 결과이다. 그래서 ‘결단적 행동’은 헌신의 마지막 출구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부분을 의지적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한 훈련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의지박약 증세가 심각하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복음에 대해 인격적으로 반응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선교기관의 책임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선교 헌신자들을 자기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일하게 할 수 있는 전략, 정보들을 제공하지 못하고, 그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돗자리를 펴주지 못한 선교관련 단체와 교회의 안이함과 나태함에 있다. 1999년 자리매김을 어느 정도 한 국내의 선교단체들은 100개가 훨씬 넘는다. 교단 선교부가지 합치면 숫자적으로는 서구 선교 주도 국가들에 비교하더라도 국내의 각종 집회들에서 헌신하는 헌신자들을 넉넉하게 담을 수 있는 숫자이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큰 교단 선교부는 목사가 아니면 아예 선교사로 인준을 해주지 않는 곳이 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수의 선교 헌신자들의 선교단체의 문을 두드리다가 높은 선별기준의 문턱에 걸려 발길을 돌려야만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각 단체마다의 이러한 기준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제 우리는 시장성의 원칙과 수요자 중심의 원칙에 따라 선교 헌신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각 단체마다 융통성 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본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일들을 했어야 했다. 전문인 선교의 분야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은 여실이 나타난다. 한국 내의 선교계에서, 전문인 사역의 주된 분야가 10개도 채 안 되는 데에 반해서 서구의 선교 국가들은 17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분야들이 전략적으로 활용되어 있고, 또 여전히 개발되고 있다.


선교 헌신자들이 안심하고 헌신의 목표에 정착(?) 할 수 있는 대안들

첫째로는 선교 헌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지 말고 오직 말씀에 집중하여 따라가는 삶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계획에 그것을 확고히 하고 보충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 속에서 내 생각을 집어넣고, 내 생활을 송두리째 집어넣으며, 내 행동들을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도 좁은 길을 선택하는 자는 복이 있을진저!

두 번째로, 선교 헌신자들은 해외에 파송 받아 나가기까지나 선교에 관계된 일로 부르심에 따라 정착할 때까지 자기가 관련이 있는 선교기관에 ‘계속적으로 정기적으로’ 꼭 붙어 있어야 한다. 꼭 한 단체만 관련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단체에 소속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쨌든 선교기관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전기 기도모임 그리고 시간에 맞춰 파트타임의 자원봉사자로서도 연결고리를 가지도록 하라. 가기가 줄기에서부터 떨어지면 살 수 없듯이 선교 헌신자들은 선교에 관계된 피(?)를 ‘계속 정기적’으로 공급 받아야만 한다.

셋째로, 선교 헌신자들은 주어진 기회에 충실하게 반응해야 한다. 주변에 선교 세미나나 선교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각종 선교 대회들이 눈에 띄어 갈 마음이 생길 때, 주변의 나를 짓누르는 어려운 환경들에 압도되어서 그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지 말라.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그리고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을 기억하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사라, 때가 악하니라(헬라어 원문 직역)”

이제 마지막으로 선교기관들에게 당부하자. 이제까지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많은 선한 일을 해 온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너무 고마워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고 개척자적인 정신을 가지고 많은 선교 헌신자 들의 다양한 요구와 자격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전략들을 개발하고, 더 양질의 정보들을 제공하고, 이 일들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양적 헌신에 관한 프로그램에도 주력해야 하지만 선교 헌신자 한 명, 한 명을 돌아보는 지극한 정성의 질 높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대를 열어 나가야만 한다.

우리 주변에 탈락하는(?) 수많은 선교 헌신자들을 붙잡는 방법을 하루빨리 터득하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21세기의 한국선교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자꾸 드는 것은 지나친 노파심에서 일까?


※이 글은 선교한국에서 발행한 청년학생선교저널 제 19호에서 발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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