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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경, 희망의 멜로디를 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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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정연경, 희망의 멜로디를 실어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있고 주위에는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으며 실록이 우거진 나무에는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있다. 바람을 타고 꽃씨들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는가 하면 땅위에는 떨어진 씨앗이 새 생명을 품고 희망의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
은혜와 소망 1 / 53.0x 45.5㎝ / Acrylic on canvas / 2005
한 그루의 나무가 그려진 화면에는 이렇듯 봄기운이 완연한 산과 들의 모습이 실려 있다. 또한 연기를 내뿜는 황톳빛 시골마을도 보이고 날개짓을 잠시 멈추고 가지위에서 쉬는 깜찍한 새들도 눈에 띈다. 보리와 새 싹,민들레 등 계절의 전령들이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정연경은 이렇듯 시골의 정겨운 모습을 생생히 묘출하고 있다. 꽃핀 들길, 나무가 무성한 뒷동산, 그리고 참새와 까치가 뒤섞여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을 생각나게 해준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소박하고 향토적이다. 갈색과 황토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작품은 누구나 쉽게 수긍하는 고향의 이미지들을 식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넉넉한 자연은 감상자에게 푸근하게 와닿는다.
오병이어 / 24.2 x 33.4㎝ / Acrylic on canvas / 2003
그동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달했던 작가는 근작에서 또 다른 의미가 담겨진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가 받은 축복을 영적으로 고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하나님을 위한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어 캔버스에 향기로운 기행문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마음속에서 자라난 신앙은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주제가 달라진 만큼 작품내용도 이제 ‘땅의 노래’에서 ‘하늘의 노래’로 전환하였다. 이것은 그림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는데 표정이 한층 밝아졌을 뿐만 아니라 색깔도 훨씬 다채로와졌다. 이와 함께 아기자기한 서술적인 내러티브에서 함축적이며 명료한 이미지의 제시로 표현방식도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은혜와 소망 4 / 76.5x36㎝ / Acrylic on canvas / 2008
그의 그림을 보면 꽃이나 잎파리 주위에는 빗살 같은 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천상의 영적인 축복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식물들은 생육하고 번성한다. 그래서 꽃들은 활짝 웃음을 짓고 있으며 싱싱한 이파리를 뽐내고 있다. 하늘을 우러르는 해바라기, 향기를 쏟아내는 보랏빛 꽃, 땅을 적시는 단비 등은 모두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축이는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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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소망 8 / 30 diameter / Acrylic on canvas / 2010
정연경의 작품은 해와 빛과 같은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기존의 사각 캔버스 외에도 일부러 동그란 캔버스를 맞춰서 해와 빛을 각인한 작품도 볼 수 있다. 해는 빛을 방출하고 빛은 해의 열기를 지녀 유사성을 띠고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해와 빛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키우고 소망을 품게 하는 초월적인 존재, 즉 은혜의 손길을 의미한다. 만일 해가 없다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듯이 은혜의 손길이 없다면 인간은 이미 소망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해와 빛은 절대자에게서 유출된 무궁한 사랑을 암시하는 메타포로 기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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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소망 11 / 90.9 x 72.7㎝ / Acrylic on canvas / 2010
그의 그림은 ‘점화’(點畵)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화면 속에는 무수한 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밤하늘의 은하수만큼 많은 점들이 진동하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일일이 셀 수도 없고 작은 존재들을 찾아내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작가는 이렇게 내면의 충만한 은혜와 감사를 붓펜으로 일구어낸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이 무수한 점들로 묘출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점을 찍고 그러면서 이 세상에 희망과 생명의 심포니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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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소망 13 / 116.8 x 91.0㎝ / Acrylic on canvas / 2010
그뿐만이 아니다. 동그라미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암시하고 있다면, 원 주위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은 충만한 내면을, 동그라미 주위로 아지랑이같이 피어오르는 모습은 감사의 마음이 멀리멀리 퍼져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선 하나하나, 점 하나하나에 소망과 찬양의 멜로디를 실어 작품을 완성해간다. 이렇듯 그의 마음에 ‘꽃물’이 들었다면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꽃향기’로 그윽하다.
일찍이 G.J.체스터톤은 예술가의 목표는 우리의 내면 안에 잊혀진 존재의 섬광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연경이 그런 작가가 아닐까. 그는 우리 내면 안에 경이로움의 보고가 있으며 그것을 환히 비추는 존재를 넌지시 표상하고 있다. 우리의 내면도 정성을 기울여 가꿀 때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특별한 사람들만 경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경이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언제나 밝고 희망적이다. 그것은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 아니라 보다 확고한 믿음으로 다져진 그의 인생관 때문이 아닐까.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휴식-평안 2 / 40.9x53.0㎝ / Acrylic on canvas / 2002
추억-여행길 / 33.4x24.2㎝ / Acrylic on canvas / 2003
추억-가을 / 24.2 x 33.4㎝ / Acrylic on canvas / 2003
작가론
청소년 시절, 창문너머 밤하늘을 바라보며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하고, 나도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이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시간 속에 내가 서 있을 것이고, 그런 순간들이 몇 번 지나면 죽음의 문 앞에 나도 서 있겠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느덧 허무한 생각에 빠져 들곤 했다.
바쁜 일상들이 몇 번 반복되는 시기가 지나가고 세상의 시간흐름에 맞추어 지나오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절대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은혜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처음에는 존재해 계시는 분 그 이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지내오면서, 작품의 주제나 소재는 계절의 느낌이나 추억속의 느낌들, 어린 시절의 기억, 정물화 등으로 그저 단순히 그리기 활동을 했었고 전체적인 색채 또한, 흙냄새가 나는 시골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을 선택하여 작품을 했었다.
단순하고도 숨 가쁜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과 생각과 관계와 계획들 가운데서 내 삶을 이끄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되었다. 그리고 삶을 뒤돌아 볼 때 여기 이 자리까지 걸어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진실한 마음으로 그 분께 은혜와 감사와 소망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남을 위한 방법과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넘치는 은혜와 감사와 기쁨의 메세지를
단 한사람만이라도 공유 할 수 있다면 나에게 맡겨주신 역할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한다
시작과 마침이 없는 동그라미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상징하고, 밝은 해와 빛을 의미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넘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은혜와 감사와 소망의 마음은 작고 반짝이는 점이 되어 외면의세계로 꽃향기처럼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언제 부턴가 나의 인생길에 늘 함께 해온 분이 계셨고, 남은 여행길도 함께 하시겠기에
나는 그분을 위한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어 캔버스에 향기로운 기행문을 남기고 싶다.
정 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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