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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전능자의 그늘 - 유미형
그림과 함께하는 묵상 No.14 요나서 4:6
그림제목: 꿈, 전능자의 그늘
전능자의 그늘에 누워 하늘을 꿈꾸다
주 하나님이 박 넝쿨을 마련하셨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자라 올라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여, 그를 편안하게 해주셨다. 박 넝쿨 때문에 요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요나서 4:6
유미형의 회화는 하늘나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초현실적 시각으로 예측한 작품이다. 작품의 근원에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가 축을 이루고 있는데, 일찍이 샤걀이 “나에게 예술과 인생의 완벽함은 성경에서 유래한다”라고 말한 이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화면 안에서 초자연적인 비현실 상황을 마치 현실 세계인 것 같은 화면 전개로 작가와 감상자가 공감하도록 재구성한다. 그러나 우리가 공존하는 3차원의 공간과는 사뭇 다른, 딱히 3차원의 공간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초현실의 작업이지만 현재 상황의 도피처가 아닌 현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방편으로써 꿈의 세계를 공유한다. 화면 전체가 성경을 근거로 비현실적 상황에서 영성과 조형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푸른색 배경 위에 전개한 화면은 여느 시골 마을 같은 낯익은 상황이지만 몽상적 화면으로 하늘나라를 꿈꾼다. 시골 마을 어귀에 있을 법한 나무와 집들은 대단하게 화려하거나 치열한, 밀도 있는 작업의 결과물이기보다는 시골 작은 마을을 재현하여 소소한 추억과 꿈의 조각들이 분해와 해체를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영원성과 신비감을 주는 공간으로 보이도록 복잡성을 배재한 단순함을 의도한다. 화면의 나무 생명체는 더 이상 나무라는 상식이 희박한 형태로, 이성적 틀이 깨어진 구도이다. 상식적인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네모 형태로, 나무가 지닌 절대 가치를 바꾸는 존재론적인 장치이다. 이 나무는 세월을 묵묵히 이어가면서 시절을 좇아 싹이 움 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5:22)를 의미한다. 또 보는 관점에 따라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은하수로 보인다면, 성령의 은혜가 쏟아지는 것으로 공감해도 좋을 것이다. 마을을 뒤에서 감싸고 있는 나무 소재는 또 다른 상징성으로 본다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확장해석 할 수도 있다. 절대자의 존재감은 산울타리처럼 우리 삶 깊숙이 둘러쳐 있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기도 하고 형이상학적이기에 인식하지 못함을 나무라는 매개체로 재해석했다. 또한, 나무 위로 날고 있는 새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마주보며 사랑의 속삭임을 들려준다. 현대인은 진지하다 못해 우울한 삶의 고뇌 속에서 새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어쩌면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만 들을 수 있어도 상처와 슬픔에 치유를 주는 아름다운 낭만과 사랑에 대한 환상이 공감되기도 한다.
작품을 통해서 감성의 초현실주의적 매혹과 조형과 영성의 일체화를 꿈꾸는 즐거움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하고 버거워서 숨이 턱까지 막혀 숨쉬기조차 힘든 현대인에게는 언제든 달려가고 싶은 도피성 길르앗 라못 같은 작품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감상자로 하여금 정신적 쉼과 회복의 안식처가 있는 생명의 숨결로 함께 공유되기를 바란다. 우울한 삶에 쉼을 주는 소망스러운 나무 작품을 통해 한낮의 뜨거운 양철지붕 같은 세상에서 잠시나마 요나의 박 넝쿨 같은 안식의 그늘을 기대한다. 전능자의 그늘이 주는 시원함과 여유 속에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나라를 꿈꿔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CTK 20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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